세계대공황 시기, 모든 해고 금지를 요구하며 싸움을 만들어가자
발제자: 심지후(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 추진위원)
주 발제문에서는 해고 금지와 안정적 일자리 확보 요구 투쟁에 대한 전반적인 총론을 이야기하였다. 이 글에서는 주 발제문의 내용 중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우선 현 정세를 코로나19 경제위기가 아닌 세계대공황 정세로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대공황으로 인해 해고, 휴직이 증가하며 노동자들의 고용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해고 금지를 중요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시급히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1. 현 상황을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약화시키고, 자본가들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뿐이다
주 발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은 세계대공황이다. 하지만 왜 아무도 ‘대공황’이라 말하지 않는 것일까. 주요 언론이 현 정세에 대해 ‘공황’이라 정의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상 자본가들이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덜기 위해 의도한 장치라 볼 수 있다. 실제로 1929년 미국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이전에는 극심한 경기침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공황’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대공황이 발생하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는 고통을 완화한다는 명목으로 의도적으로 ‘공황’ 대신 ‘불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뒤이어 당선된 루즈벨트도 같은 의도로 용어를 다시 순화시켰는데,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불황’ 대신 ‘경기후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정의하는 용어들이 순화되어 온 역사를 보면 지금의 ‘코로나19 경제위기’ 역시 자본가들이 불순한 의도로 순화한 것이라는 생각에 쉽게 다다를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을 단순히 코로나19 경제위기로 규정할 경우 공황을 불러온 자본주의의 문제는 가려지고, 이 위기의 원인을 코로나바이러스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 마치 실제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문제가 생겨났으며, 이 시기만 끝나면 지금의 위기가 감쪽같이 사라질 것 같은 착각에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인류 공동의 적에 맞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 함께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하며 그렇기에 노동자들 스스로 타협을 제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다다를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자본가들은 이미 이 점을 적극 이용하여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코로나19를 빌미로 노동자들에게 스스로 무기한 무급휴직, 권고사직 중 선택하라고 하거나, 무급휴직을 거부하면 출퇴근이 불가능한 곳으로 인사발령을 내 자진 퇴사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등 온갖 비겁한 수를 써가며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월 정리해고 당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경우만 보아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경영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2019년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난 때문에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 정세를 코로나19 경제위기로 규정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지금 상황이 세계대공황, 즉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분명히 보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전인류적 위기 상황에 자기 이익만 쫓는 요구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여 무의식중에 위축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심각한 위기를 야기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낮은 수위의 요구안을 먼저 제시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되어도 여전히 자본주의의 모순은 사라지지 않으며, 노동자들의 삶이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도 있는 세계대공황 정세에서, 생존권 투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작점은 지금의 문제가 자본주의 자체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공공연하게 말하는 데 있을 것이다.
2. 세계대공황 시기, 모든 해고 금지를 요구하며 싸움을 만들어가자
한편 민주노조 운동의 일부, 심지어 진보세력, 사회주의 세력마저도 지금의 정세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경제위기 정도로만 인식하며 당면과제에 대응하는 식으로 투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올 초 5월에 정리해고 당한 아시아나케이오 동지들의 투쟁에 연대하면서, 만약 지금의 정세를 단순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일시적 경제위기로 인식하며 투쟁하게 될 경우 노동자들이 이미 후퇴한 상태에서 투쟁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만약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몰려오는 세계대공황 쓰나미 앞에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휩쓸려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 지금 상황은 2008년 미국발 세계대공황의 연장선에서 또다시 시작된 세계대공황임을 분명히 하고, 자본주의 모순으로 인한 공황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임금조건을 후퇴시키고,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해고 금지를 요구하며 하나의 싸움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에게 2020년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걸린 시기다. 올해 노동조합으로 포괄되지 못한 특수고용노동자들부터 시작해서 무급휴직, 희망퇴직, 권고사직, 대량해고가 대거 나타났다. 통계청이 11일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64세 취업자는 약 2700만 명으로 1년 전보다 약 42만 명(1.5%) 감소했다. 올 초와 지금을 비교해보았을 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량해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올 4월(47만6천 명) 이후 6개월 만에 또다시 취업자 감소폭이 40만 명을 넘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6월 청년 실업률은 99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인 10.7%를 보였다. 필자는 공연예술노동자인데, 여느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공황의 여파를 맞았다. 상반기에 예정되어 있던 공연들이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일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쿠팡 같은 일용직을 제외하고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시기였던지라 수개월 간 일거리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처럼 공황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공황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본은 물론이요 살아남은 자본도 대량해고, 공장폐업 등을 통해 재생산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 악화시킨다. 이미 극도로 불안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노동자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공황은 비단 노동자들에게만 위기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도 위기에 봉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황이란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하여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주목하여, 만약 세계대공황 정세임을 노동자들이 정확히 인지한 상태로 해고 금지 요구를 이어가는 투쟁을 모아간다면 자본에 맞서는 거대한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자본가들에게 노동자들의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기는 하나, 예전에 비해 해고 금지 문제와 일자리 문제를 하나로 모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하게 조직된 싸움이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다. 이스타항공, 한국게이츠, 대우버스 등에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서울 도심의 집회를 아직도 금지하고 있고 노동개악까지 감행하려고 하는 등 명실상부하게 자본가 편에 서 있다.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박한 고용문제인 모든 해고 금지를 과감하게 요구하며 싸움을 만들어간다면, 노동자들의 투쟁을 충분히 조직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해고 금지 투쟁에서 투쟁의 실마리를 찾아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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