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가 주최한 「제3차 주거 문제 특별강좌」를 수강했다. 3월 18일부터 4월 15일 중 매주 금요일, 약 한 달 사이 다섯 번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전체 강좌는 왜 토지와 주택값은 치솟기만 하고, 뚜렷한 해결책은 나올 수 없는지 알 수 있도록 이뤄졌다.
‘지대론’을 근거로 토지 국유화의 개념과 역사적 이행을 확인하고, 엥겔스의 프루동주의자 및 부르주아 비판과 이러한 관점의 실천적 의미를 인지하게 되었다. 이어서 과도적 요구를 통해 토지와 주거 문제의 정확한 원인과 대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핵심 내용이 정리된 주교재와 함께, 해설자료집 번역서와 복습 가능한 영상 자료가 제공되어 학습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질의응답과 토론으로 수업 내용을 심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강좌 운영에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하며, 주거 문제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과 강의에서 학습한 내용 전반을 요약하여 덧붙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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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혼자 살아요?” 도윤(가명)이 내게 물었다. 10살이었던 그는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질문만큼 말도 많았다. 오늘은 간식 뭐예요? 하고는 어제 먹었던 떡볶이를 떠올렸다. 그것은 정말 쫀득쫀득했지만, 양념이 너무 매워서 고생했으니, 다음엔 순한 맛으로 사달라며 당부했다. 도윤의 물음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가령 떡볶이의 식감이나 맛 같은, 그의 집 이야기가 다채롭게 이어질 거라고 기대했다.
“저도 혼자 쓰는 방이 있으면 좋겠네요. 근데 괜찮아요. 제가 욕심이 좀 많나 봐요.”
해맑게 웃는 도윤의 앞에서 마음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당시 나는 5평 원룸에 살았다. 다행히 보증금은 부모님께 빌릴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일종의 투자라고 했다. 다만 월세가 문제였다. 일정에 대학 강의보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먼저 채웠다. 매일 새벽이 되어 귀가했다. 샤워 후에는 헤어드라이어를 쓸 수 없었다. 방음이 되지 않아서,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이사를 마친 밤에 이웃이 화를 냈다. 현관 앞에 앉아 선풍기로 머리를 말리며 졸린 눈을 감고 뭉친 종아리를 주물렀다. ‘그래. 이렇게 지원받아 살 수 있는 게 어디야’ 하면서. 내가 그저 안도했기 때문에, 한 아이의 체념을 앞당긴 것 아닐까. 부끄럽게도 그를 점점 잊어갈 즈음, 「제3차 주거 문제 특별강좌」를 소개받았다. 그의 웃음이 더는 사라지지 않도록, 주거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해답을 찾기로 했다.
첫 번째 주제로 맑스의 지대론을 학습했다. 토지의 구매가격인 ‘지가’는 ‘지대’를 ‘이자율’로 나누어 역산된 값이며,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이자율은 하락하고 지가와 지대는 상승하는 경향성이 있었다. 또한 농업 생산의 차액지대와 절대지대를 학습하여 초과 이윤의 지대로의 전환 즉, 어떻게 지주계급이 자기들의 참여 없이 달성된 사회발전의 성과들을 열매처럼 소비하고 합리적 농업의 발전을 열렬히 방해하는지 깨달았다.
이는 건축지 지대와 광산 지대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특히 건축지 지대는 토지에 포섭된 고정자본의 발달로 증대했다. 이러한 지대와 토지 가격의 상승은 주택가격 상승을 야기하고, 지대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한 투기적 건축 행태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었다. 끝으로 토지 국유화가 최종 목표라기보다 과도적 성격의 요구이며, 더 높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지구에 대한 불합리한 사적소유를 비판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주제로 맑스·레닌 저작에 나타난 토지 국유화의 의미를 배웠다. 우선 맑스는 토지의 사적소유란 규모에 상관없이 합리적 농업과 이로 인한 생산력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주와 자본가는 잉여가치 분배를 두고 갈등하기 때문에, 토지 국유화가 자본주의와 양립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적소유 일반을 공격하는 ‘과도적’ 요구이자 경제 발전에 따른 사회적 필연으로 토지 국유화를 내세웠다.
이와 달리 레닌은 농업 부문의 봉건 잔재 일소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위해 토지 국유화를 중요 과제로 삼았으나, 1917년 2월 혁명 이후 사회주의혁명과 연결하여 주장을 강화했다. 러시아 정치 세력들에 의해 농업강령이 수정되며, 농민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자유롭게 토지를 임차하여 경작하는 데에 있다고 인식했다. 농노해방 및 절취지 강탈 이후에도 소규모 경작, 부역, 봉건적 예속 관계의 농업 형태 등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1905년을 기점으로 농민들은 스스로 문제의식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절취지 반환, 지주 토지·분여지 몰수 등을 토지 국유화 요구로 집약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레닌은 멘세비키의 자치체소유화론이 부분 국유화와 봉건적 잔재의 일종이라 비판하며, 철저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공화제 수립과 토지 국유화 과제를 연결하였다. 이어서 부르주아혁명이 일단락되면 사회주의혁명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치 맑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내용처럼 토지 국유화가 운동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생산양식 전체의 변혁을 위한 수단이 된 것이다. 또한 봉건 지주제의 청산과 자유로운 계급투쟁을 통해, 농민들이 생산력 발전에 따른 대규모 합리적 농업의 필요성을 분별한 일도 하나의 동력이 되었다. 이로써 토지 국유화가 지대를 공적 용도로 활용함으로써 토지·주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노동자 민중의 계급 의식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강력한 요구라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주제는 엥겔스의 『주택문제에 대하여』를 바탕으로, 프루동주의자 및 부르주아가 제안하는 주택문제 해결책에 대한 비판 내용을 익혔다. 이들은 주택난에 관하여 ‘이자 상한제’와 ‘임대료의 할부금화’ 등 이른바 정의로운 법률이나, ‘국가 보조’ 및 ‘건축 협회’ 등을 이용한 주택 획득을 해법으로 언급한다.
이에 대하여 엥겔스는 노동자 계급의 구체적인 여건을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로 인해 노동자는 주거지를 자주 옮겨 다니며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 한다. 그러므로 토지·주택 보유는 이동의 자유가 중요한 노동자에게 구속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구조 자체의 폐지가 어떤 대안보다 중요한 것이다.
나아가 엥겔스는 노동자의 주택 소유가 절약된 생활수단의 가치만큼 노동자 임금을 하락시킬 것이라 비판한다. 그리고 소 생산자 사회로의 회귀나 노동자-자본가 모두의 자정 작용 또한 획기적인 방안이 아니라고 정리한다. 결국 주거 문제의 핵심은 자본주의 철폐와 함께 농촌과 도시의 대립을 제거하고 노동자 계급이 모든 생활수단과 노동수단을 전유하여 스스로 유용한 노동을 하는 데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주제이자 마지막 강의에서 토지 국유화,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주택의 몰수, 그리고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이라는 과도적 요구와 그 의미를 다시 점검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과 전세계적 수준의 저금리 및 양적완화 기조에서 비롯한 지가·지대와 주택가격의 폭등을 자본가 국가의 정책으로는 진정시킬 수 없음이 너무나도 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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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도권 아파트의 입주자대표가 어린이들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를 봤다. 주민도 아니면서 단지 안의 놀이터를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각박한 세상을 개탄했다. 관련 시행령을 인용하며 아이들을 변호했고, 구역마다 공공 놀이터를 설치하자고 청원했다. 아마도 주거 문제 특별강좌를 수강하기 전의 나였다면 같은 의견을 내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나와 도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주장을 다음과 같이 하고 싶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주택을 몰수하여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노동자 민중에게 공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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