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붕괴의 시대, 실패하고 있는 기후운동
올해 열리는 기후정의행진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라는 구호 아래 기후위기 시대에 바뀌어야 할 것은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구호가 무색하게 기후위기는 전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를 낳은 세상 역시 바뀌지 않고 있다. 2019년 9월 이후 벌써 네 번째 거리 행진에 나섰지만, 변한 건 없이 우리는 이제 기후위기란 말조차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의 기후재난, 기후붕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전세계적인 기후운동을 촉발시킨 계기는 2018년에 나온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였다. 2015년에 나온 파리협약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목표로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로 막는다는 목표를 제시했던 바, 이 특별보고서는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막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인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완전히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로써 지금 인류에게는 기후위기를 막을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인류는 비상상황에 처해있고 이에 걸맞은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었다. 2018년 이래로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이 늘어났고 한국에서도 기후운동이 크게 성장했다.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저지하는 것, 인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완전 감축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이해되었다.
그로부터 벌써 6년이 흘렀지만, 기후운동은 기후위기 상황을 전혀 바꿔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저지하는 것이 기후운동의 절박한 목표였음에도 이를 달성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를테면 세계기상기구(WMO)는 2023년 지구 기온이 이미 산업화 이전 평균 기온보다 1,45℃ 상승하였고, 2024~2028년 중 한해라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올해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이 1.5℃를 넘어서는 역사상 첫 해가 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우리는 올해 그 어느 때와 비할 데 없는 폭염과 역대 최장의 열대야로 고생했고, 이제 ‘에어컨 없는 삶’은 선택 가능한 삶의 방식이 아닌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여름철 한반도 주변 수온도 30도 가까이 치솟으며, 한반도 기후와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지구 기온 상승이 그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1.5℃를 넘어서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는 기후재난, 기후붕괴라는 더 심각해진 비상상황에 처해 있다. 이것은, 기후운동이 자신의 동력이자 목표였던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뜻한다. 기후운동이 그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기후재난, 기후붕괴 상황을 바꿔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냉혹한 현실이다.
기후위기의 진짜 주범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 이 말은 기후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절박함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 말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우리 집은 이미 다 불타버렸다.” 이제 우리는 집이 다 타버려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된 것 같이 더욱 절박한 심정을 갖고 기후재난을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후위기가 발생하게 된 원인, 그것의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진단해야 한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이 내걸고 있는 구호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말도 바뀌어야 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면 결국 추상적 문구로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IPCC와 같은 국제적 기후위기 대응기구들은 한결 같이 기후위기가 산업화 이후 인간의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시기는 바로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이다. 기후위기의 발생과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성장이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이윤 추구에 다른 모든 것을 종속시키는 생산체제, 이를 위해 오로지 생산을 위한 생산을 추구하는 체제인 자본주의가 이러한 생산을 뒷받침하기 위해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무지막지하게 소비해왔기 때문에 기후위기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기후위기의 책임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에 있다.
기후위기의 피해 역시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사회의 막대한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와 지주 등에게 기후위기를 일으킨 데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소유한 부를 이용해 기후위기의 피해를 완화시키거나 피해간다. 사회 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 민중, 그리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은 기후위기를 일으킨 책임자도 아니면서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자본주의는 기후위기의 해결도 가로막고 있다. 우선, 화석연료 산업과 관련된 기업 및 국가는 화석연료 사용을 지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23년 말, 석유 생산을 중단할 생각이 전혀 없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그 대표적 예였다. 둘째,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자본가 및 국가 들 중 상당수는 핵발전이나 탄소포집기술과 같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큰 문제를 낳는 잘못된 대안을 제시하여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 셋째,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각국 정부가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후위기를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의 경우만 해도 2030년까지의 불충분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 정해 최근 헌재에서조차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고, 윤석열은 제대로 된 기후정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위험천만한 핵발전 확대만 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신속하게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의 인위적 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이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 민중과 생물종들의 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방식의 기후위기 해결은 요원하다. 제 아무리 불평등이 재난이 되는 현실을 바꾸자고 주장한들,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고 기후재난은 막을 수 없다.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기후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반자본주의를 분명히 하지 못한 채 타성화, 관례화되고 있는 지금의 기후정의행진을 넘어서자!
지금의 기후운동은 기후위기를 막는데 실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기후운동세력에게서 기후운동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절박한 인식은 부족한 실정이며, 세상을 바꾸자고 하지만 정작 그 핵심인 자본주의와 정면 대결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올해 907 기후정의행진만 보더라도, 초창기 기후위기 관련 집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온실가스 배출 제로 요구는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어, 이번 기후정의행진에서는 정부에게 감축 목표 강화를 요구하자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기후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기후정의행진의 기조 속에 분명하게 반영되지 못한 채 기껏해야 기조에 대한 장황한 해설 속에 모호한 언어로 흩뿌려져 있을 뿐이다. 이렇다보니 정확히 자본주의를 겨냥하지 못하는 모호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는 어정쩡한 태도는 민중들로 하여금 기후위기의 현실을 직시하고 기후운동의 방향을 정확하게 세우는 것을 가로막아 기후위기 해결을 지체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기후정의행진이 매년 9월 열리는 행사로 자리 잡으면서 타성화, 관례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 역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집회, 행진 준비 과정에서는 큰 탈 없이 집회와 행진이 마무리되는데 방점이 찍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집회와 행진 형식 역시 매년 반복되는 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집회에 참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그들의 다양한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한 시도는 보기 힘들고 집회 발언들은 대부분 주요 참가단체들의 발언들로 국한되어 있다. 대규모 기후위기 집회를 무수한 민중이 투쟁에 동참하고 자본과 정권에 민중의 강력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회로 삼는다거나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민중의 힘을 조직하는 자리로 만든다는 문제의식은 찾기 힘들고, 기후정의행진이 마치 큰 문제없이 큰 사고 없이 끝나야 하는 안온한 연례행사인 것 마냥 돼 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는 반자본주의 기후운동을 본격화하자!
다시금 강조컨대 기온이 1.5℃ 이상 상승하는 것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제 기후위기란 말조차 무색해지는 기후재난, 기후붕괴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에겐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 이런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 다행히도 그동안 기후정의행진은 여러 내용적 형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의 진짜 주범인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는 대중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같은 목소리는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반면 반자본주의를 분명히 하지 않는 기후운동은 기후위기 해결을 지체시켜 갈수록 기후운동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자본주의를 분명히 하지 못한 채 타성화, 관례화되고 있는 지금의 기후정의행진이 이런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기후정의행진의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반자본주의 기후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 민중이 반자본주의 기후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뿐 아니라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고 자본주의의 핵심적 경제관계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이 기후운동의 주체로 서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형성될 수 있다.
우리의 집이 다 불타버리려고 하고 있다. 우리에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은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노동자, 민중이 주체가 되어 기후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와 싸우지 않는다면 기후붕괴는 막을 수 없다. 함께 반자본주의 기후운동에 나서자!
–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에 즉각 나서서 기후위기를 막아내자!
–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모든 신규 화력발전소의 건설을 중단시키자!
– 에너지 관련 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민중이 통제하자!
– 자본의 이윤을 위한 생태학살, 동물학살 막아내자!
– 핵발전은 기후위기 대안이 아니다. 치명적 위험 가중하는 핵발전 중단시키자!
– 기후위기의 주범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 철폐하여 기후붕괴 막아내자!
– 타성화, 관례화되는 기후정의행진을 넘어서 반자본주의 기후운동을 본격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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