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기의 과도적요구 토론회 자료집
사람들의 정체성은 다양한 내용과 형태로 구성된다. 그리고 성별(gender)이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은 오늘날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는 내용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주류 사회에서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화하며 성적 지향을 그 이분화된 성별에서 다른 성을 향한 배타적이고 성애적인 지향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되며, 이와 같이 성적인 것(Sexuality)에 대하여 사회적 규범성 밖에 놓인 성소수자들은 각종 차별과 억압에 노출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일상적으로 듣는 성소수자에 대한 수많은 혐오 발화들이나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수용되지 않을 불안감과 소외감, 그리고 자신의 성향과 사회적 규범성이 충돌할 때 느끼는 정체성 혼란과 같은 부분들에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행동 양식에 대해 끊임 없이 수정을 강요받는 것, 성소수자 혐오에 기인한 물리적 폭력과 위험에 노출되는 것, 직장 고용과 승진 등에 있어 부당한 차별을 받는 것까지, 그리고 이외에도 갖가지 종류와 형태의 다양한 차별과 억압은 지금도 성소수자들을 옥죄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를 둘러싼 물질적 조건들 위에 놓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 역시 오늘날 성소수자들을 둘러싼 물질적 조건들—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위에서 작동한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화된 성별 구분과 그에 따른 행동양식과 규범들은 그것이 놓인 생산양식에 의해 제약된다. 가령 인류가 가족 단위로 살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가 계급 사회로 발전하면서부터이며, 이성애가 아닌 형태의 성적 관계에 대한 비난은 그것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출산의 기능을 갖지 못한다는 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성애자 및 성소수자 정체성의 등장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야 나타나게 되었다. 이분법적 젠더와 이성애에 대한 규범성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규범인 것이다.
따라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종식시키는 것은 이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것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의 과도적 요구들 가운데 성소수자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를 제시하고, 성소수자문제와 그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태도를 밝혀주고 있다는 것은 매우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과도적 요구”를 내걸고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물질적 조건을 변혁하는 전망 속에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의 성소수자문제 해결을 위한 과도적 요구는 다음과 같다.
1) 법적인 성을 남/여 이외의 다양한 범주로 확대하라
2) 동성결혼을 포함한 사람들의 다양한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라
3) 성별정정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에 의료보험을 적용하고 이를 무상화하라.
4) 법적, 행정적 권리를 행사할 때 국가에 직접 행사하도록 하라
5)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요구의 각 항들에 대해서 모두 동의한다. 특히, “5)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지금의 한국 성소수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요구이다. 물론, 차별금지법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실현 가능하며, 실제로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차별금지법이 법제화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을 내걸고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노동계급 성소수자들과 성다수자들이 단결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성소수자가 차별하고 억압당하는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며,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다수는 노동자계급이다. 성소수자 억압 문제에 대한 직접적 인식과 해결을 위한 노력은 결국 노동자계급 대중 내부에서의 차별과 억압을 해소시키고 그들을 단결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또한 요구안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요구들을 성취해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시 성소수자해방에 있어 반동에 휩쓸릴 수 있다. 가령, 1) 항에서의 요구와 같이, 법적 성별에서 남/여 이외의 다양한 범주가 만들어질 때, 그 성별은 새로운 차별과 혐오, 억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성소수자문제 해결을 위한 과도적 요구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 요구가 노동자 계급 전체의 요구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이고 구조적으로 나타나는 성소수자 억압은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통제하고 근대 이성애중심적 핵가족을 고착화하는 것은 임금노동자의 재생산 비용을 절감시키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욕망을 반영한다. 몇몇 이름난 기업들은 친-성소수자적(퀴어프렌들리)인 모습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그것은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갖고 있는 일부 성소수자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것이며, 기업들은 이 새로운 시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성소수자 억압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성소수자 해방을 위한 요구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요구일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러할 때만이 성소수자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가 진정으로 과도적인 요구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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