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을 위한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 소책자 발간 기념 집담회 발제문

발제자: 조분이(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 회원)

현재 한국에서 육아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법정 육아휴직 가능기간은 52주로 OECD 34개국 평균인 69주와 비교하여 크게 뒤처지지 않지만, 실 이용기간은 10.3주로 OECD 34개국 평균인 61.4주의 1/6 수준이다.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여남 노동자 모두에게 큰 고통을 주는 일일 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경력단절, 독박육아로 이어지기에 성별 임금격차 등 여성 노동자가 겪는 차별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육아휴직 문제는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있거나 자녀를 양육하는 사람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여성 노동자 전체의 노동 조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가 여성들의 절박한 요구로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 통상임금 100% 지급 요구를 공론화하고자 3월 31일 <여성해방을 위한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 소책자를 발간하게 되었다. 소책자를 준비할 때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발간 기념 집담회에서 발제를 맡게 되어 기쁘다. 본 집담회를 계기로 소책자의 내용이 알려지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는 ‘여성해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한들,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사회에 만연한 각종 성차별은 물론 나날이 커져가는 범죄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삶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 노동자로서’ 받는 차별과 억압일 것이다.

한국은 지난 2013년 첫 발표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OECD 국가 중 유리천장지수(성별 임금격차, 경제활동참가율 성별 격차 등)에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해왔으며, 성별 임금격차와 경력단절 문제는 특히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남성 노동자의 71%에 불과하며(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2024년 여성경제활동백서」), 월 임금격차는 무려 147만원에 달한다(통계청, 「2023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 또한 최근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10명 중 6명이 경력단절을 경험하였고 여성의 경력단절 경험 비율은 남성보다 21.3% 높았으며, 남성의 경우 ‘더 좋은 직장을 위한 준비’와 ‘급여, 업무 내용 등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주요 원인인 반면 여성은 ‘결혼, 임신, 출산 등의 문제’를 제일 큰 이유로 꼽았다(민주노동연구원, 「고용상 성차별 경험과 성별 임금 격차 인식 관련 설문조사」).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2.3%로, 남성 노동자 29.7%보다 훨씬 높다(한국노동연구원, 「2023년도 한국노동패널 기초분석 보고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차별과 억압이 여성의 임신, 출산 가능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성과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충돌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생산력 발전은 성별에 따른 근력 차이를 약화시키고, 가사노동의 부담을 크게 줄임으로써 여성이 최초로 사회적 생산에 대거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라는 자본주의 고유의 특징은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자를 쉬지 않고 노동하게 하여 최대한의 이윤을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만든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쉴 새 없이 공장, 사무실을 돌려야 하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임신, 출산 가능성이 있는 여성 노동자는 중단 없이 일할 수 있는 남성 노동자에 비해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가 받는 차별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 핵심에는 임신,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이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성별 임금격차의 원인으로 고용주의 성차별적 편견 등이 거론되지만 그러한 요인들을 통제해도 성별 임금격차는 거의 없어지지 않거나 미미하게 개선될 뿐이며, 노동자의 승진, 임금인상을 위해서는 정해진 근무시간 외에도 고용주의 긴급 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상태(‘온콜(on-call)’)에 있어야 하나 이는 자녀 양육의 필요와 충돌하고, 이때 양육을 주로 담당하는 것이 여성이기에 여성이 승진이나 임금인상을 포기하고 양육에 집중하는 선택을 하게 됨으로써 남성보다 소득이 낮아진다는 오늘날의 연구(클라우디아 골딘, 「커리어 그리고 가정」)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남성은 자녀 유무와 관계없이 고용률이 변하지 않지만 여성의 경우 자녀 유무에 따라 경력단절 격차가 벌어지는 고용상 불이익이 나타난다고 밝힌 최근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출산에 따른 여성의 고용상 불이익을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인 ‘차일드 패널티(Child Penalty)’가 거론되기도 하였다(KDI 포커스: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이처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해고를 당하거나 경력단절을 겪게 되는 여성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의 더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게 되고, 그리하여 여성 노동자 집단 전체가 남성에 비해 열악한 지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가 차별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가 임신, 출산을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바로 여성과 남성 노동자 모두 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것이다.

여성해방을 가로막는 자본가 정치세력의 육아휴직 정책

물론 지금도 육아휴직 제도는 여남 모두에게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이에 따라 육아휴직 사용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게다가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자본가 정치세력들은 ‘일·가정 양립’을 핵심 키워드로 내걸고, 마치 경쟁하듯이 육아휴직 사용률을 올리기 위한 정책들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그렇게 작년 9월 ‘육아지원 모성보호 3법(남녀고용평등법,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해부터는 출산휴가 신청 시 육아휴직 통합신청이 가능하고, 사업주는 14일 이내 서면으로 허용해야 하며 기간 내 미허용 시 자동개시 된다. 월 최대 150만 원이던 육아휴직 급여가 통상임금 100% 수준인 월 최대 250만 원으로 대폭 인상되었고, 기존에 육아휴직 급여의 25%를 복직 후 6개월 이상 근무 시 지급하던 사후지급금 제도가 폐지되기도 했다. 부모 각각 1년까지 사용 가능하던 육아휴직 기간은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1년 6개월까지 연장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네 번까지 나눠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는 나무랄 데 없이 잘 갖춰진 듯 보이나, 실상을 따지고 보면 결국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첫째, 사용 여부에 대한 노동자의 선택권을 여전히 남겨두고 있어서 사용률을 높이는 데 실효성이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자본가가 생산수단의 소유와 더불어 노동자에 대한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해고와 경력단절, 온갖 불이익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노동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십 원짜리 한 푼이라도 아끼면서 오직 쉴 틈 없이 일을 시키기 위해 혈안이 된 자본가에게는,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노동자를 굳이 기다려 줄 이유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급여가 여전히 낮아 노동자들이 자녀를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우선 육아휴직 급여는 육아휴직 사용 직후 1~3개월 상한 250만 원, 4~6개월 200만 원, 7개월 이후부터는 통상임금의 80%인 상한 160만 원에 불과, 사후지급금을 폐지한다고 해도 터무니없이 낮던 이전의 급여 수준에 비해 높아졌을 뿐이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고물가 시대에 아이까지 키우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수준인지라, 노동자들은 육아휴직 기간임에도 육아와 알바를 병행하거나 사용 기간을 전부 채우지 못하고 일터로 일찍 복귀하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다.

셋째, 육아휴직 문제의 핵심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엽적인 부분만 손보는 수준의 정책을 내고 있다. 예를 들어 육아휴직 법정 사용 가능 기간을 연장하거나 분할 사용을 가능케 하는 것, 대체인력 채용 지원금을 최대 120만 원으로 인상 지급하는 제도를 신설하는 것 등은 노동자들이 육아휴직 사용 자체를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들이다.

애초에 육아휴직을 한낱 저출생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치부하는 자본가 정치세력은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을 해소할 의지조차 없으며, 따라서 가장 중요한 육아휴직 사용 여부를 여전히 노동자의 ‘선택’에 맡기면서 기존 제도를 개편하는 수준으로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선택권을 남겨놓는 것이 아니라, 부모 모두 육아휴직 자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해야만 한다.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 휴직기간 통상임금 100% 지급을 요구하자!

이렇듯 결국 노동자들이 육아휴직을 마음놓고 쓸 수 있도록 만들고, 이로써 여성 노동자들의 경력단절, 독박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육아휴직 의무화,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해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와 제보된 바를 종합하면 아직까지도 직장 내에서는 육아휴직 사용을 ‘민폐’ 취급하는 분위기와 ‘육아휴직 쓰면 승진 포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육아휴직 관련 제도를 사용하면 회사에서 직무 재배치 같은 본인 의사에 반하는 인사 조치나 승진 제한, 임금차별, 교육훈련 기회 제한 등의 페널티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올해부터 상장사의 사업보고서에 육아휴직 사용률 공시가 의무화됨으로써 대기업을 중심으로 남성 육아휴직 사용이 전보다는 확산되는 듯 하나 여성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불과하고,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처참하여 ‘육아휴직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에 있어서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성 노동자 1,7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작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남녀 모두 육아휴직 신청은 가능하지만 부담을 느끼거나 눈치가 보인다’라고 답했으며, ‘여성은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으나 남성은 그렇지 않다’는 답이 뒤를 이었다. 해당 조사에서 남성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이유로는 ‘인사고과, 승진 등 직장생활에 불이익이 우려되어서’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민주노동연구원, 「남성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 격차와 차별」). 여기에는 육아휴직 사용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자본가가 이를 어길 시 노동자는 신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는 점, 설령 신고를 한다고 해도 처벌이 쉽지가 않고 과태료에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오히려 자본가로 하여금 ‘돈만 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한몫한다.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는 여성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해서 반드시 쟁취해야 할 중요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성별을 떠나 이미 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바라고 있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진보세력 및 여성해방운동, 노동운동 내에서 그 중요성이 충분히 부각되거나, 운동화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일각에서는 당장 나 하나 먹고사는 문제만으로도 빠듯하고, 출산 후 경력단절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임신, 출산의 선택지마저 박탈당하는 청년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에서 과연 육아휴직 문제로 광범위한 운동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당장 나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집도, 차도, 안정적인 직장도 없는 내게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영영 없을 일처럼, 남의 일처럼 낯설게만 느껴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진정 낳고 싶은지, 안 낳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전에 경력단절의 막막함부터 떠올리며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 더더욱 허망하고 분노스럽게 느껴진다.

비상계엄 이후 광장에 모인 수많은 여성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이 처한 삶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연대하고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더 다양한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들을 마음껏 표출하며 투쟁하길 원하는 여성들도 굉장히 많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중에서도 모든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싸우는 것은 성별임금격차, 열악한 노동조건 등 여성 노동자 전체가 받는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시 말해,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 요구는 여성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 여성해방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여성해방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고 그저 출산율을 높이는 데에만 급급한 자본가 정치세력의 허울뿐인 정책에 기댈 것이 아니라, 이제는 여성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부모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 ‘육아휴직 기간 통상임금 100% 지급’을 요구하는 강력한 투쟁을 만드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