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결과와 사회주의세력의 과제

성 두 현 |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 대표

4.10 총선 참패 후에도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아 지지율이 17%까지 떨어져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급기야는 12월 3일 무모하게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하여 제 명을 재촉하였다. 수구세력은 예상대로 대선에서 민중의 심판을 받아 큰 표 차이로 패배하였다. 수구세력은 12.3 친위쿠데타 실패로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하였는데 21대 대선 결과는 수구세력의 역사적 궤멸과정이 확실하게 진행 중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자유주의세력은 큰 표 차이로 승리하였지만 대선 전 여론조사가 보여준 것처럼 압승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이 내란 진압을 기세 있게 진행하지 않아 수구세력을 압도하지 못하였고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민중들의 기대가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역사적으로 몰락한 사이비진보세력은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아 대선에서 그 입지가 더욱 더 축소되었다.

앞으로 수구세력은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해갈 것이다.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라는 자살골을 차서 그 반사이득으로 집권할 수 있게 된 자유주의세력은 많은 한계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특히 악화일로의 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수구세력이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해갈 것으로 예상되는 역사적 시기에 향후 한국 사회의 정치구조는 자유주의세력과 사회주의, 진보세력이 주요한 정치적 세력으로 경쟁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시기에 사회주의세력은 자신의 과제를 보다 분명하게 설정하고 투쟁해야 한다.

오늘 발제에서는 이상의 내용들을 검토한다. 먼저 21대 대선이 놓여 진 맥락을 살펴보고, 21대 대선 결과를 분석한 후 향후 정세 전망과 사회주의세력의 과제를 밝혀 보려고 한다. 오늘 집담회가 활발한 대화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1. 21대 대선이 놓여진 맥락

– 임기 초부터 무능을 드러내어 지지율이 정권초반에 20%대까지 떨어진 윤석열정권은 갈수록 무능, 무도, 미․일에의 굴종을 드러내고 민생을 파탄 내어 위기가 가속화되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의 참패 후에도 윤석열정권은 전혀 반성하고 변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윤석열정권은 4.10총선에서 참패하였다. 총선 참패 후에도 윤석열정권은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아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붕괴되고 명태균 녹취록 폭로 등 정권말기현상이 본격화되어 지지율이 17%까지 떨어졌다.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급기야는 12월 3일 무모하게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하여 제 명을 재촉하였다. 친위쿠데타 실패 후 대중들의 윤석열 퇴진투쟁에의 참여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어 윤석열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수구세력 중 한동훈을 중심으로 한 소수가 탄핵에 찬성하여 비교적 일찍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으나 이후 수구세력의 다수가 보인 태도는 박근혜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윤석열과 수구세력 다수는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해 극단적으로 후안무치하고 막무가내식의 태도를 보이며 필사적으로 결집하였다. 공수처가 윤석열에 대해 세 차례 소환을 반복하다 뒤늦게 12월 31일에야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는데, 윤석열은 1월 3일 진행된 1차 체포영장 집행을 무장상태의 경호처를 동원하여 방해하였다. 윤석열은 수천 명의 경찰 투입으로 1월 15일에야 체포되었다. 윤석열의 탄핵소추안 통과 후 권한대행 역할을 맡은 한덕수는 노골적으로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였고, 최상목은 마은혁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였으며 내란 특검법을 두 번이나 거부하였다. 윤석열의 체포가 지체되는 사이 시간을 번 수구세력은 필사적으로 결집하여 내란 진압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였다. 윤석열 극렬 지지자들은 내란 선동을 주저하지 않았고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는 난동을 부렸다.

수구세력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수구세력은 3월 7, 8일에 법원과 검찰을 동원한 사법쿠데타를 벌여 내란 수괴 윤석열을 기습적으로 석방시켰다. 수구세력은 여세를 몰아 헌법재판소의 수구적 헌법재판관들을 움직여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탄핵 기각, 각하를 끌어내려고 획책하였다. 수구세력의 내란 진압에 대한 조직적 방해는 자유주의세력이 내란 진압을 명확한 목표로 설정하지 않고 탄핵에 몰두하는 허점을 파고들어 기세를 올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노골적으로 사법쿠데타를 일으켜 내란 수괴를 석방시킨 것과 이를 통해 헌법재판소 심판에 영향을 미치려 한 시도는, 단기적인 효과와는 달리 민중들의 분노와 반발을 급격하게 고양시켰다. 그리하여 수구세력은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더 고립되게 만들어 버렸다. 민중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윤석열의 파면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고양되었고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강력한 압력을 가하였다.

윤석열의 복귀를 정신승리를 하며 기대하던 수구세력은 윤석열의 파면으로 기세가 크게 꺾였다. 그러나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해 수구세력은 윤석열의 파면 이후에도 여전히 후안무치하고 막무가내식의 태도를 보였다. 권한대행 한덕수는 윤석열이 파면된 지 4일 만에 마은혁을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면서 이완규, 함상훈을 헌법재판관에 지명하는 도발을 하였다. 이에 머물지 않고 한덕수는 후안무치하게 본인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것도 저울질하다 결국 출마를 선언하였다. 윤석열과 한덕수가 단일화쇼를 하여 한덕수를 국민의힘 후보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결국 김문수가 후보로 결정되었다. 전광훈과 함께 자유통일당을 할 정도로 뉴라이트 극우이고 탄핵을 반대한 김문수가 국민의힘 후보가 되어 수구세력은 윤석열과 거리를 두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미 12.3 친위쿠데타 실패로 수구세력이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하였고, 뉴라이트 극우이고 탄핵을 반대한 김문수가 후보가 되어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 탄핵되어 실시되는 조기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문수가 선거운동 기간에 실제로 한 선거운동은 이재명에 대한 네거티브가 전부였다.

– 자유주의세력은 정세를 오판하고 내란세력과 타협하여 무기력해졌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은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후 마치 자신들에게 권력이 다 넘어 온 것처럼 착각하였고 내란세력과 타협하였는데, 정작 한덕수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였다. 결국 한덕수를 탄핵 소추하였지만 연이어 최상목이 마은혁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내란 특검법을 두 번이나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은 최상목의 탄핵소추를 주저하였고, 자유주의세력은 내란 수괴 윤석열의 체포가 아닌 파면에 더 집중하여 내란 진압을 신속하게 진행하지 못하였다. 내란세력의 집요한 방해로 내란 진압이 지지부진해지자 민중들은 자유주의세력의 무기력에 실망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쿠데타 발생 및 실패 후에 급증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다시 하락하였다.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이 너무 설쳐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수구세력의 프레임에 말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은 내란세력의 방해에 결기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졌다.

수구세력으로부터 연이어 뒤통수를 맞았음에도 자유주의세력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내란세력을 철저히 진압하는 기조에 서지 않고 파면에 몰두하며 헌법재판소의 파면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3월 7, 8일 수구세력의 사법쿠데타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세력은 내란 수괴 윤석열의 기습적인 석방이라는 심각한 사태에도 기민하고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은 구속취소 결정을 내린 법원에 대해서는 비판조차 하지 못하였고 즉시항고를 포기한 검찰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타격을 가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12월 14일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통과 때와 비교하여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도 불확실한 것으로 되었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끝없이 늦추어지고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임기종료시점이 다가오자 다급해진 자유주의세력은 뒤늦게 허겁지겁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탄핵조차 실패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자유주의세력은 한덕수에게 마은혁의 임명을 강하게 압박하고 한덕수와 최상목에 대한 탄핵소추카드를 꺼내 들었고 헌법재판소를 압박하였다.

결국 민중들의 압박으로 매우 어렵게 윤석열의 파면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윤석열의 파면이 당초의 예상 보다 어렵게 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유주의세력이 내란세력을 철저히 진압하는 기조에 서지 않고 내란세력과 타협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세력은 여기에서 교훈을 찾지 않고 윤석열이 파면되자 또 다시 내란세력과 타협하는 길로 되돌아갔다. 윤석열의 파면 이후 곧바로 한덕수가 이완규, 함상훈을 헌법재판관에 지명하는 도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세력은 한덕수와 최상목의 탄핵을 부자 몸조심 하듯이이른바 역풍을 우려하며 회피하였다. 또한 대선을 앞두고 자유주의세력은 내란 특검 실시, 윤석열의 재구속, 내란 재판 대응 등 내란 진압의 당면 과제들의 실천을 대부분 대선 후로 미루고 대선에서의 승리에 집중하였다. 특히 내란 재판이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음에도 자유주의세력은 이렇다 할 조직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높지만 내란 진압을 기세 있게 진행하지 않아 이재명과 김문수의 실제 득표율이 여론조사 초기 지지율 격차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 파면되어 실시되는 조기대선이기 때문에 민중들의 내란심판 의지가 강하여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찬성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NBS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권교체론은 5월 2주 이후 50%를 계속 넘고 5월 3주에는 57%까지 올라갔다. MBC가 5월 1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정권교체론은 57%까지 올라갔다. NBS 5월 3주 지지율 조사에서 이재명 49%, 김문수 27%로 격차가 22%나 되어 이재명이 당선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논란이 되지 않고 실제 선거에서의 격차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 이미 대선에서의 승패가 결정됐다고 할 정도로 이재명과 김문수의 지지율 격차가 컸을 뿐만 아니라 김문수가 선거운동 내내 네거티브로 일관하여 이번 대선은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대선이었던 20대 대선보다도 더 네가티브 선거였다. 이번처럼 민중들의 기억에 남게 부각된 의제가 없는 대선은 없었다. 악화일로의 삶의 문제가 전혀 부각되지 못하였다.

– 4.10 총선에서 역사적으로 몰락한 사이비진보세력은 더욱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진보당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는 배신행위까지 벌여 스스로 사이비진보세력임을 대중적으로 확인시켰는데 이 번 대선에서는 아예 이재명을 지지하고 당 대표가 이재명 선대위원장으로 이재명 지지 선거운동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이비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바꾸어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의 틀로 권영국 후보를 출마시켰으나 뚜렷한 대안적 요구를 제기하지 않고 이재명 비판을 회피하였다. 노동당은 사이비진보세력과 행보를 같이 하며 매우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였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은 사이비진보 후보인 권영국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였다.

2.21대 대선 결과의 분석

1)21대 대선 결과

– 이재명과 김문수의 득표수 차이는 289만 1874표(8.27%)로 20대 대선 때 24만 7천 표(0.73%)와 비교하여 매우 컸다. 득표율 차이는 NBS 5월 3주 지지율 조사에서의 지지율 격차 22%에 비해서는 크게 작았다.

– 권영국은 0.98% 득표하였다(심상정 20대 대선에서 2.37% 득표, 19대 대선에서 6.2% 득표,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3.01% 득표).

– 이준석은 8.34% 득표하였다. 10%에 육박하는 득표를 하였으나 수구의 재편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정도의 득표에는 실패하였다.

– 21대 대선 성별․연령별 출구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40대, 50대에서 이재명이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70대 이상에서는 김문수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으며 20대 이하에서는 여성에서는 이재명이 승리하고 남성에서는 김문수가 승리하였다. 20대 이하 남성에서 이준석이 37.2%를 득표하여 1위를 하여 20대 대선과 비교하여 득표율이 이재명은 36.3%에서 24%로 감소했고 김문수는 20대 윤석열 58.7%에서 36.9%로 감소하였다.

2)21대 대선 결과의 분석

– 임기 초부터 무능을 드러내어 지지율이 정권초반에 20%대까지 떨어진 윤석열정권은 민중의 심판을 받아 총선에서 참패하였다. 총선 참패 후에도 윤석열정권은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아 지지율이 17%까지 떨어졌다.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급기야는 12월 3일 무모하게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하여 제 명을 재촉하였다. 친위쿠데타 실패 후 윤석열과 수구세력 다수는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해 극단적으로 후안무치하고 막무가내식의 태도를 보이며 필사적으로 결집하였다. 수구세력은 사법쿠데타를 일으켜 윤석열을 석방하고 윤석열의 파면을 막아보려 하였지만 결국 윤석열은 민중의 힘에 의해 파면되었다. 윤석열의 파면 후에도 수구세력은 여전히 후안무치하고 막무가내식의 태도를 보였고 단일화쇼까지 하면서 재집권을 시도하였지만 뉴라이트 극우이고 탄핵을 반대한 김문수가 국민의힘 후보가 되어,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 탄핵되어 실시되는 조기대선에서 수구세력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였다. 수구세력은 예상대로 민중의 심판을 받아 대선에서 큰 표차이로 패배하였다. 수구세력은 12.3 친위쿠데타 실패로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하였는데 21대 대선결과는 수구세력의 역사적 궤멸과정이 확실하게 진행 중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총선에서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던 자유주의세력은 12.3 친위쿠데타 실패의 반사이득으로 정세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고 친위쿠데타 이후에 보인 수구세력의 후안무치하고 막무가내식의 태도에 민중들의 내란세력심판 의지가 고양되어 집권에 성공하였다.

– 예상대로 자유주의세력이 큰 표 차이로 승리하였지만 대선 전 여론조사가 보여준 것처럼 압승한 것은 아니었다. 친위쿠데타 실패 후 윤석열이 파면되어 실시된 조기대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의 표 차이는 압도적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이 내란 진압을 기세 있게 진행하지 않아 수구세력을 압도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대선 승리가 예상되고 있어서 자유주의세력은 내란 진압의 과제를 대선 후로 미루고 ‘부자 몸조심’하듯이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다른 한편 수구세력은 친위쿠데타 실패 후 필사적으로 결집하였고 노골적으로 진영싸움 전술을 동원하여 기존의 지지세력의 상당부분을 끌어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친위쿠데타 이전부터 이재명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층이 상당히 많아 이것이 일부 이어져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이 싫어 윤석열을 찍는 식의 투표가 이번에도 적지 않게 발생했기 때문이다(갤럽이 6월 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김문수를 찍은 이유 중 ‘이재명이 싫어서’가 30%였다.). 참고로 하나의 사실을 추가하면 친위쿠데타 실패 후 윤석열이 파면되어 실시된 조기대선이라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론이 지난 대선 때와 비교하여 훨씬 높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별로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매우 충격적인 사태가 전개되었음에도 정권교체론이 훨씬 높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민중들의 기대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보아 자유주의세력이 그 동안 잘해서라기보다 수구세력이 총선 참패 후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윤석열이 친위쿠데타까지 일으켰다 실패하고 이후에도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는 등 수구세력이 매우 잘못했기 때문에 자유주의세력이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 영호남 지역주의는 과거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부산, 경남, 울산의 경우는 다소 완화된 측면이 있다. 부산에서 이재명은 40.14%를 득표했고 경남에서는 39.4%를 득표했으며 울산에서 42.54%를 득표했다.

–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강남3구에서 수구세력에게 몰표가 나왔다. 지난 대선 때보다 다소 득표율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득표율이 높았다. 서초구는 이재명 33.93% 김문수 55%, 강남구는 32.23% 56.58%, 송파구는 42.11% 46.59%였다.

– 선거 결과 자유주의세력의 주도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지난 대선과 비교해서 자유주의세력은 큰 표 차이로 승리했다. 또한 이미 국회에서 자유주의세력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정치세력들 사이의 역관계에서 자유주의세력이 압도적인 우위에 서게 되었다.

– 이번 대선은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대선이었던 20대 대선보다도 더 네거티브 선거였다. 이번 대선에서는 20대 대선에서의 부동산정책, 일자리정책, 최저임금 1만 원 등과 같은, 쟁점이 되어 민중들의 기억에 남게 부각된 의제가 없었다. 악화일로의 삶의 문제가 전혀 부각되지 못하였다.

– 4.10 총선에서 역사적으로 몰락한 사이비진보세력은 더욱더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진보당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는 배신행위까지 벌여 스스로 사이비진보세력임을 대중적으로 확인시켰는데 이 번 대선에서는 아예 이재명을 지지하고 당 대표가 이재명 선대위원장으로 이재명 지지 선거운동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진보당은 되돌아오기 어려운 길로 들어섰다. 사이비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바꾸어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의 틀로 권영국 후보를 출마시켰으나 뚜렷한 대안적 요구를 제기하지 않고 이재명 비판을 회피하였다. 권영국은 0.98% 득표에 그쳤다.

– 노동당은 사이비진보세력과 행보를 같이 하며 매우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였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은 사이비진보 후보인 권영국을 비판적으로 지지하였다. 이런 두 조직의 행동은 진보세력의 대안으로 나설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것이다. 0.98% 득표 후에도 평가에서 대선에서 씨앗을 심었고,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라는 식의 정신승리식 태도가 만연할 정도로 진보세력은 매우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다.

– 민중의 활동성과 자발성이 12. 3 친위쿠데타 실패 이후 급격하게 고양되고 민중들의 힘으로 윤석열이 파면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파탄, 민생파탄이 심해지고 민중들의 이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번 대선에서 민중들의 기억에 남게 부각된 의제가 없었고 악화일로의 민중의 삶의 문제가 전혀 부각되지 못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첫째 12.3 친위쿠데타 실패 후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한 수구세력이 막무가내식으로 내란 진압에 저항하다 탄핵을 반대하고 뉴라이트 극우인 김문수를 후보로 세워 아무런 대안 제시 없이 네가티브로 일관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판세상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자유주의세력은 민중들의 요구를 일부나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의 집권에 대한 기득권세력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행동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셋째는 사이비진보세력인 진보당이 아예 이재명을 지지하고 선거운동을 하였고 또 하나의 사이비진보세력인 정의당이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바꾸어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의 틀로 권영국 후보를 출마시켰으나 뚜렷한 대안적 요구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당,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등이 사이비진보세력과 명확한 분리선을 치지 못하고 노동당처럼 사이비진보세력과 행보를 같이하거나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처럼 이들과 영합하였기 때문이다.

– 이미 제22대 총선에서 수구세력은 총선에서의 참패로 역사적으로 궤멸할 처지에 놓였고, 다른 한편 사이비진보세력은 역사적으로 몰락하였다. 21대 대선에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더 강화되었다. 12.3 친위쿠데타의 실패로 수구세력은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했고 21대 대선은 이 추세가 불가역적임을 확인해주었다. 사이비진보세력은 총선에서 역사적으로 몰락하였음에도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아 그 입지가 더욱 더 축소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을 반영하여 대선 이후 한국사회는 본격적으로 대변화의 시기에 돌입할 것이다.

3. 향후 정세전망과 사회주의세력의 과제

1) 향후 정세전망

– 12.3 친위쿠데타 실패와 이번 대선에서의 패배로 수구세력은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할 위기에 처하였다. 지난 세 번의 총선에서 수구세력은 연달아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점차 지지기반이 대구, 경북, 서울 강남3구로 축소되는 것이 고착화되었다. 이미 추세적으로 수구세력은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해가는 단계에 들어섰다. 대선 직후 국회에서 내란특검법이 통과됨에 따라 곧 제대로 된 내란 수사가 시작되게 되면 친위쿠데타 이후 유지된 수구세력의 대오는 와해되기 시작할 것이고 희망이 사라지는 것만큼 저항은 더 필사적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 진 패턴처럼 수구세력의 막무가내식 행동은 수구세력을 더욱더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기댈 것이 이재명 재판밖에 없어 수구세력은 이 문제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 자유주의세력은, 윤석열정권이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다 급기야는 윤석열이 친위쿠데타라는 자살골을 차서 그 반사이득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세력이 잘 했다기보다 수구세력이 너무 잘못해서 민중들이 대규모로 거리로 나와서 자유주의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자유주의정권이 다시 등장하였는데 이재명정권은 앞으로 많은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자유주의세력이 내란종식을 공언하였지만 대선 전에 이미 자유주의세력은 내란 진압에서 내란세력과 타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태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재명정권은 문재인정권과 똑같이 악화일로의 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이 성장을 강조하고, 윤석열의 부자감세정책을 그대로 두려고 하는 데에서 이미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민중들이 대규모로 거리에 나서 윤석열정권을 퇴진시켰다는 점이 분명한 정세에서 성장을 강조하고 부자감세정책을 그대로 두려는 태도는 민중들의 분위기와 요구에 대해 감수성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이재명정권이 자본가정권으로서 곧 한계를 드러낼 것임을 보여준다.

– 앞으로 수구세력은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해갈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난 것인데 이들이 주요 정치적 세력으로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수구세력이 세운 대통령 둘이 연달아 탄핵되고 하나는 친위쿠데타까지 일으켰다 실패한 것은 수구세력이 한국사회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한국사회의 정치구조는 자유주의세력과 사회주의, 진보세력이 주요한 정치적 세력으로 경쟁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이런 전망 속에서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대안세력으로 나설 각오로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진보세력의 주체적 상태는 이런 역할을 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상태에 있다. 지난 총선에서 역사적으로 몰락한 사이비진보세력은 이후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았다. 진보당은 더욱더 배신의 길로 나아갔고 정의당은 자신의 몰락에 대해 깊이 있게 반성 변화하지 않았다. 사이비진보세력으로 변질되지 않았던 노동당은 총선 이후 사이비진보세력과 분리선을 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당과 점점 더 행보를 같이 하며 변질되어 왔다.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권영국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며 영합하였다. 발전의 전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 진보세력이 한국사회에서 해야 하는 역할과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현재의 주체적 상태 사이에는 매우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이러한 간극을 좁히는 것이 매우 시급한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과제이다.

– 그 동안 상대적으로 경제상태가 좋았던 미국도 경기후퇴에 들어가고 트럼프가 관세폭탄을 터뜨려 앞으로 세계대공황의 양상이 격화되고 이의 영향으로 경제파탄, 민생파탄이 더욱더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민중의 삶의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투쟁의 중요성이 더욱더 커질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각별한 대응이 필요하다.

2) 사회주의 세력의 과제
철저한 내란 진압

– 12.3 친위쿠데타 발생 이후 자유주의세력과 비상행동은 일관되게 내란 진압 기조에 서서 투쟁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12월 14일 국회에서의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내란 수괴 체포투쟁에 집중하지 못하고 파면에 경도되어 활동하였다. 자유주의세력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대선을 앞두고 내란 특검 실시, 윤석열의 재구속, 내란 재판 대응 등 내란 진압의 당면 과제들의 실천을 대부분 대선 후로 미루고 대선에서의 승리에 집중하였다. 또한 자유주의세력은 대선 전과 같이, 철저하게 내란을 진압하지 않고 앞으로 내란세력과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번에 철저하게 내란을 진압하지 않을 경우 잔류 내란세력, 극우세력이 사회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때 새로운 내란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철저하게 내란을 진압해야 한다. 사회주의세력은 철저하게 내란을 진압하는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 또한 실제로 내란을 진압하는 데에서 민중의 힘이 가장 중요하므로 내란 진압 투쟁에의 민중의 참여를 확장시켜가야 한다.

기존 정치방침의 지속적 실천: 사회주의세력은 지속적으로, 자본가정치세력 모두가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이 필요하며, 대안은 사회주의세력이라고 주장하고 투쟁해야 한다.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는 윤석열정권 등장 이후부터, ‘사회주의세력은 지속적으로, 자본가정치세력 모두가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이 필요하며, 대안은 사회주의세력이라고 주장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정치방침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왔다. 자유주의세력이 다시 집권한 지금 사회주의세력은 이 정치방침을 더욱더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 사회주의세력은 자유주의정권의 한계를 정권 초기부터 폭로하고 악화일로의 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체제와의 투쟁이 필요하며, 대안은 사회주의세력이라고 주장하고 투쟁해야 한다.

내부혁명을 통한 사이비진보세력의 정리

– 총선에서 몰락하였음에도 사이비진보세력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전혀 반성, 변화하지 않은 채 계속 진보세력, 정당 행세를 하면서 진보운동, 진보정치를 변질시켰다. 진보당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계열정당으로 전락하였고 대선에서 이재명 지지선거운동을 하였다. 이들 경향의 세력이 민주노총 집행부를 장악하고 민주노총을 변질시키고 있다. 정의당은 단지 독자적 정치행보를 한다는 것만으로 자신이 사이비진보세력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며 진보정치 전반을 변질시키고 있다. 사회주의세력은 앞으로 진보운동, 진보정치의 미래의 사활이 걸렸다는 각오로 내부혁명을 통해 이들 사이비 진보세력을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과 분리선을 치고 투쟁하지 않으려는 진보세력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

– 사이비진보세력의 변질이 악화됨에 따라 앞으로 사이비진보세력과 기회주의적인 진보세력 내 단체나 개인들이 이재명정부에 하위파트너로 참여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을 방치할 경우 진보운동은 더불어민주당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수준으로까지 변질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초기단계에서부터 철저히 비판하며 투쟁해야 한다.

진보정치의 대안 제시: 현재의 역사적 단계에서 진보정치의 유일한 대안이 사회주의정당건설임을 집중적으로 선전한다.

– 총선 이후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는 사이비진보정치가 몰락한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였다. 또한 사이비진보정치세력이 철저한 자기 반성 없이 겉모습만 바꾼 채 계속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거나 혹은 사이비진보정치세력과 단절하지 않는 조직과 개인들이 애매모호한 내용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대안인 것처럼 제시하여 문제를 흐리게 할 가능성이 있어 이에 대해 폭로하며 투쟁하였고 현재의 역사적 단계에서 진보정치의 유일한 대안이 사회주의정당건설임을 집중적으로 선전하였다. 그러나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사이비진보정치세력과 분리선을 치고 투쟁하는 단체나 활동가들이 늘지 않고 오히려 노동당과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은 이들에 영합하는 행동을 하였다. 앞으로 ③과 ④의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운동상태에 대한 냉정한 판단에 기초해서 실행방침을 수립해야 한다. 사이비진보세력뿐만 아니라 변질되지 않은 사회주의, 진보세력 안에서조차도 자신을 반성, 변화하는 태세가 확립되어 있지 않아 우리의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지 않고 있다. 이들조차 무기력해져서 생존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여 실천해야 한다.

사회주의역량의 강화

제22대 총선과 21대 대선은 진보운동은 이대로 해서는 망한다는 교훈을 적나라하게 반복하여 보여주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회주의활동을 확립하고 강화해 가야 한다.

– 운동기풍의 재확립, 자기비판과 사상투쟁을 통한 불철저한 행세식 사회주의활동의 극복

– 학습선전의 강화

사회주의 학습 선전 활동은 모든 활동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회주의 기초교양 활동을 활동가와 선진적 노동자들 사이에서 확대해야 한다. 특히 12.3 친위쿠데타 이후 각성된 청년들 사이에서 학습선전을 강화한다.

– 자유주의세력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과도적 요구의 대중적 제출과 투쟁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는 퇴진투쟁의 9대 요구를 제출하고 윤석열정권 퇴진투쟁과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였다. 이를 더욱더 강화하여 자유주의세력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요구를 대중적으로 제기하고 투쟁한다.

– 학습선전의 강화와 과도적 요구투쟁의 결합을 통한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의 역량의 강화와 사회주의 정당 건설 역량의 구축

학습 선전의 강화와 과도적 요구 투쟁을 결합하여 이론과 실천이 통일된 건실한 사회주의자들을 양성하고 사회주의정당건설연대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정당 건설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 진보정치의 내부혁명의 전개

진보정치는 퇴보에 퇴보가 이어지면서 심각하게 변질되었다.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변질되지 않은 사회주의, 진보세력조차 변질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부혁명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여 실천한다.

적극적인 국가보안법 철폐투쟁

국가보안법은 자본가정치세력들의 독점적 정치구조를 유지하는 데에서 보루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사회주의세력이 대안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을 정면에서 가로막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유지되는 것은 수구세력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세력 역시 이것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세력은, 국가보안법이 유지되는 것이 수구세력의 반대 때문인 것처럼 말해 왔으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제21대 국회에서 자유주의세력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세력이 폐지에 반대하여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은 자유주의세력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실패하였다. 사회주의세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수립하고 새롭게 선두에 서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맺으며

이상에서 21대 대선이 놓여진 맥락을 살펴보고, 21대 대선 결과를 분석한 후 향후 정세를 전망하고 사회주의세력의 과제를 밝혀 보았다. 발제에서 전망하였듯이 앞으로 수구세력은 완전히 역사적으로 궤멸해갈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의 정치 구조는 자유주의세력과 사회주의, 진보세력이 주요한 정치적 세력으로 경쟁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이런 전망 속에서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대안세력으로 나설 각오로 투쟁해야 한다. 그런데 진보세력의 주체적 상태는 그 동안의 퇴보 때문에 이런 역할을 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 진보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해야 하는 역할과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현재의 주체적 상태 사이에는 매우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이러한 간극을 좁히는 것이 매우 시급한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세력의 부분적 쇄신이 아닌 내부혁명 수준의 주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12.3 친위쿠데타 발생 후 민중들의 잠재된 힘이 폭발하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였다. 민중들은 자신의 힘으로 윤석열의 무모한 친위쿠데타를 막았다. 민중들은 친위쿠데타를 계기로 마침내 대규모로 거리로 나와 국회로 하여금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게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민중들은 역사를 되돌리려는 내란세력들의 연속적인 망동들을 분쇄해버렸다. 그 결과 민중들은 자신의 힘으로 윤석열을 파면시켰다. 민중들의 진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새롭게 깨어나서 자신의 힘을 자각한 민중들은 앞으로 그 동안 억눌렸던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며 악화일로의 자신의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이다. 사회주의세력은 투쟁하는 민중들과 함께 보다 더 진취적인 자세로 새로운 세상을 힘차게 열어가야 한다. 오늘 집담회가 활발한 대화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